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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 허용법이 드러낸 프랑스의 딜레마

선교회본부 2016.11.18 01:25 조회 수 : 2356

프랑스가 동성결혼 허용법 폐지 시위와 동성애 혐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과학 교과서 속 '성 이론'이 논쟁이 되면서 동성결혼 허용법 폐지 시위가 더욱 격해졌다.

“성(性)에 대한 이론은 사상의 식민지화이며 세계 전쟁과 같다.” 캅카스 순회를 마치고 돌아오던 비행기 안, 프란치스코 교황은 프랑스 교과서를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서 그는 프랑스의 한 천주교 가정 이야기를 전했다. 저녁 시간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라는 아버지의 질문에 열 살 아들이 여자아이가 되고 싶다는 답을 했고,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아들이 학교 교과서에서 ‘성 이론’을 배운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2014년부터 동성결혼 허용법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벌이는 ‘만인을 위한 시위(Manif Pour Tous)’가 2주 남짓 남은 때였다. 교황의 쓴소리가 알려지면서 또 한번 동성결혼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프랑스 교과서 편집 담당자와 교육부 장관 나자발로 벨카셈도 해명에 나섰다. “프랑스 과학 교과서 속 ‘성 이론’은 특정한 성을 선택하도록 유도한 것이 아니라, 고정관념과 성차별을 줄이고 프랑스의 주요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교육하려는 목적 아래 쓰인 것이다.” 하지만 해명이 논란을 더 키웠다. 이를 두고 학부모 단체와 학교 간의 갈등이 빚어지는 것은 물론 상호간의 신뢰까지도 무너지고 있다.

ⓒEPA 10월16일 파리에서 ‘만인을 위한 시위(Manif Pour Tous)’ 회원과 시민 수만명이 동성결혼법 폐지와 전통적 가족 가치 존중을 촉구하며 시내를 행진했다.

2013년 5월 프랑스에서는 ‘만인을 위한 결혼(Mariage Pour Tous)’이라 불리는 동성결혼, 입양의 합법화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 법이 시행되자마자 프랑스 최초의 동성결혼이 이뤄졌다. 반대로 ‘만인을 위한 시위’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동성결혼 허용법 폐지 시위도 시작되었다. 2014년 시위에서는 1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반대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동성결혼과 입양의 합법화를 반대했다. 또한 모든 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 즉 양성에 의해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으며, 아이들에게서 그 권리를 빼앗는 것은 ‘부정의’라고 주장했다. 즉, 동성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상호 보완성을 무시하고 생물학적 섭리를 벗어나는 것이며, 동성 부모가 아이를 입양하면 아이에게 정체성 혼란을 심어줄 수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동성결혼 허용법을 둘러싼 논란에는 두 가지 제도에 대한 찬반 대립도 얽혀 있다. 동성 부부를 위한 PMA(시험관 아기·인공수정을 통한 출산)와 GPA(대리모 제도)가 그것이다. 대리모 제도는 프랑스 정부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는데도 ‘만인을 위한 시위’ 단체는 동성 부부에 대한 두 제도의 반대 의사를 강력히 주장한다.

지난 10월16일 또 동성결혼 허용법 폐지 시위가 벌어졌다. 파리의 중심 거리들은 시위 단체와 경찰로 인해 통행이 금지되었다. 엄마·아빠와 아이가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깃발을 든 시위대가 행진에 나섰다. 유모차를 끌거나 아이들의 손에 직접 깃발을 쥐여주고 거리에 나선 이들이 눈에 띄었다. 몇몇 동성 커플은 이 시위대에 맞서 입을 맞추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프랑스 국민은 동성결혼 허용법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9월 발표된 프랑스 여론기관 IFOP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3%가 동성결혼과 입양에 찬성했다. 동성 부부에 대한 시험관 아기의 찬성도 57%에 달했다. 반면 동성결혼 허용법을 폐지하자고 하는 응답자는 38%에 그쳤다. 특히 이 여론조사에서는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 가까운 사람 중 동성애자가 있다는 사람이 71%에 달했고, 그들은 더욱 동성결혼 허용법에 대해 호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종교적 측면에서는 비종교인들이 천주교 신자보다 동성결혼 합법화를 더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천주교는 프랑스인들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여론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호모포비아’가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프랑스 이블린 지역의 의원인 크리스틴 부탕은 “동성애는 혐오적 행위이다”라고 말해 5000유로 상당의 벌금형을 받았다. 또 그는 동성애 혐오 반대 단체인 무스(Mousse)와 청년 단체 레퓌지(Le Refuge)에 손해배상금 2000유로를 내기도 했다. 파리 생제르맹의 축구선수 세르지 오리에는 동성애자인 자신의 코치를 조롱하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이 밖에도 마트 직원부터 학교 선생님까지 동성 커플들이 길거리에서 모욕을 당하고 직장 상사, 가까운 사람에게 놀림을 받는 등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프랑스에서 일상화되어 있다. ‘SOS 호모포비아’ 단체장 질 드에는 “그보다 심각한 것은 청소년 내에서의 혐오 문제다. 동성애자의 69%가 18세 미만인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동성결혼 허용법은 프랑스 사회의 딜레마

동성애·동성결혼 논란은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통령 선거 이전에 치러지는 우파 후보자 경선을 한 달여 앞둔 현 시점에서, 동성결혼법에 대한 지지가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주요 우파 후보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장 프레데리크 푸아송 기독민주당 후보가 동성결혼 허용법의 폐지를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그 외에도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 Front National)의 마리옹 마레샬 르펜 의원은 이번 동성결혼 허용법 폐지 시위에서 지지 연설을 했다. 프랑수아 피용 후보자는 동성결혼 허용법의 개정을 언급했는데, 이를 두고 지지를 얻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정당이나 정치적 견해와는 연관이 없다”라는 시위 단체의 주장이 잇따랐다.

동성결혼 허용법에 대한 논란은 프랑스 사회의 딜레마를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가족’은 경제적·사회적·도덕적 제도를 대표하고 그 중심에 있는 프랑스 사회의 근간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 근간은 전통적인 천주교의 가치와 자유주의적 현대 가치의 충돌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자유를 중시했기 때문에 프랑스는 1967년 피임의 허용, 1974년 낙태의 허용, 1999년 동거법(시민연대협약)을 통과시켜 사회에 적용시켰다. 이와 달리 2013년 동성결혼과 입양의 문제에서는 아직까지 의견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자유로운 의견을 받아들여왔던 프랑스 사회가 분열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와 개방적 태도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와 기존 전통을 중시하는 기성세대 간의 이념 충돌, 천주교 신자가 비종교인 수의 2배에 달했던 과거와 달리 비종교인이 천주교 신자 수의 2배에 달하는 사회 변화 또한 갈등의 중요 요인이 되었다.

‘성 이론’에 관한 프랑스 교과서가 그토록 화제가 되었던 이유,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와 함께 유모차를 끌고 ‘만인을 위한 시위’ 현장에 나섰던 이유는, 과거와 현재의 가치 충돌을 떠나 교육이라는 미래 가치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중요 가치인 자유라는 이름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동성결혼 문제가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로 전해질지는 여전히 프랑스 사회의 큰 과제다.

파리ㆍ이유경 (자유기고가)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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