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전쟁터로 변한 차드에 남아 있던 한국인은 모두 38명. 수도인 은자메나에 17명, 수도에서 18km 떨어진 외곽의 센터에 18명의 선교팀이 구성되어 활동중이었고 김영섭 선교사 가족(3명)이 카메룬 국경의 남쪽지방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었다.
수도에 있던 17명은 프랑스군 기지로 먼저 대피했고, 김영섭 선교사 가족은 국경을 통해 카메룬으로 무사히 빠져나간 상황. 센터에 남아 있던 18명만 최후까지 고립되었던 절박한 상황에서 사선을 넘어 무사히 파리에 안착한 양승훈 선교사를 통해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들어본다. [편집자주]
긴박했던 당시의 상황을 전해주시죠.
지난해부터 반군과의 간헐적인 교전으로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주 초에 북쪽지방이 반군에게 점령당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목요일(1월31일)에는 전화가, 금요일에는 모든 통신과 라디오 등도 끊겨버리면서 긴박한 상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금요일 오전에 인편으로 편지가 도착했는데, 주불 대사관을 통해 전해진 소식은 빨리 대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 시간에는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었습니다.
시내에 체류하고 있던 박근성 선교사님과 이시우 한인회장님 가족이 대피소로 우선 피신했고, 두 분은 끝까지 현지에 남아 한국대사관 프랑스 대사관 외무부 등과 계속 연락을 취하면서 고립된 저희 18명을 피할 수 있도록 진두지휘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국경쪽으로 피하지 않고 교전이 벌어지는 시내 쪽으로 들어오신 이유는
당시는 반군이 대통령궁을 제외한 시내 전역을 완전 장악한 상태였습니다. 인편을 통해 마지막 멧세지를 전달 받았는데, 움직이지말고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안전할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요일까지 교전이 계속되었고, 일요일 밤이 되자 지방에 있던 정부군이 올라와 반군을 공격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대통령궁에는 정부군이, 이를 둘러싸고 반군이, 또 그 외곽을 정부군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로 교전이 계속되다가 반군이 몰리면서 북쪽인 수단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고, 퇴각하는 반군을 정부군이 쫓게 되는 상황이었는데, 수단 쪽에서 반군의 지원군이 다시 오면서 재공격이 시작될 거라고 현지인들이 상황을 전해주었습니다. 외국인은 무조건 떠나야 할 긴급상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피신을 하기로 했는데, 수도에서 서남쪽 카메룬 국경까지 20킬로 되는 그곳까지 이미 피난민들로 꽉 차 있어서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센터에 남아 있던 저희 18명은 고립된 상태에서 국경쪽으로 빠져나갈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12킬로 지점의 미군기지로 이동하면 안전할 것 같아 상황을 알아보았는데, 이미 미군기지는 민간인들이 장악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그때는 모든 통신이 두절돼 현지인들을 통해서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이미 피난민들의 행렬로 꽉 차 있어 국경을 넘을 수는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 지 아무런 판단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일단 저희는 시내로 들어가 프랑스 군 기지로 가야 살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 현지인을 통해 계속 상황을 파악해 본 결과 후퇴하는 반군을 쫓아 정부군이 뒤쫓고 있어, 시내 쪽에는 군인들이 대부분 빠져나갔다는 것을 파악하고 다리를 건너 시내진입을 시도하기로 결정하고 3대의 차량에 18명이 타고 출발했습니다.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전쟁의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사체들이 이곳저곳 나뒹굴고 있었고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들... 약탈과 방화로 무법천지로 변한 아비규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이동하는 저희 차량을 누군가 세워 빼앗았다면 뺏길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7km를 이동해 시내로 통하는 다리에 도착했는데, 그곳 역시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뤄 꼼짝을 못하는 상황, 그런데 시내 쪽으로 가는 사람이나 차량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들 그곳에서 빠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희는 오히려 그곳을 향해야 했으니...
적막이 흐르는 그곳으로 가던 도중에 차드 적십자 차량을 만났습니다. 저희는 상황을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도움을 요청하자, 그 사람들이 본부와 연락하더니 저희 차에 깜박이를 켜게 하고 저희를 에스코트해 주었습니다. 얼마 안가서 코너를 도는 순간, 시내를 지키고 있던 정부군의 대포가 저희 쪽을 향해 겨누고 있었습니다. 만약 당시에 적십자 차량을 만나지 못하고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면 정부군에 의해 폭격을 맞을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파리공항에 도착하기까지의 상황은
무장한 군인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지만 적십자 차량의 인솔로 저희는 그곳을 무사히 빠져 나와 프랑스 군부대 옆 노보텔(임시 대표소)에 도착할 수 있었고, 프랑스 군 차량과 수송기를 이용해서 프랑스군 베이스캠프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에서야 저희는 비로소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피난민들로 국경쪽이 막혀있어 오히려 시내로 들어왔고, 그 시간에 적십자 차를 만났고... 이 모든 상황들이 다시 생각해보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베이스 캠프에는 4일(월) 저녁 8시에 도착했고, 군 수송기를 타고 5일(화)가봉으로 이동, 대피한 외국인들과 합류, 그곳에서 에어프랑스 전세기를 타고 6일(수) 오전 9시 파리 CDG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차드를 떠나오실 때 소감은 어떠셨는지
차드를 떠나면서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10여년간 뿌린 선교의 씨앗도 그랬지만, 더 처참한 꼴로 변해버린 차드 국민들이 너무 불쌍했습니다. 안그래도 세계 최빈국인데 이번 전쟁의 피해가 언제나 회복될 수 있을지...
저희 팀이 구성된지 얼마 안되었고, 임신부와 어린아이들도 있었는데, 그러한 상황에서 한 명도 안 다치고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얼마 전에 아프간 사태를 겪었고 이번에 무슨 사고라도 났으면 국가적으로도 정말 엄청난 시련이 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시우 회장님 가족은 사업체를 다 놓고 빠져 나오셨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종전이 되면 차드로 돌아가서 상황을 파악해 보시고 포기하거나 귀국하거나 판단해야할 것 같습니다. (현재는 여행 금지국이 되었으니까 들어갈 수 없는 상황)
저희 선교사들은 일단 선교본부 지시를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추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재불 한인사회에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먼저 차드를 위한 재불한인들의 관심과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모두들 기력이 빠져버려 저희로서도 당장은 무엇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최대한 프랑스 한인사회에 폐가 안되도록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프랑스에 계셨던 분들이라 며칠 쉬고 정신적인 안정을 찾으면 최선책을 찾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전쟁의 극한 상황, 생과사의 고비를 넘어 오신 분들이라 심리적으로 긴장이 풀리면 어떤 현상이 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며칠 쉬면서 안정을 찾으면서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겠습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저희 교민 38명이 한 사람도 털끝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 나올 수 있도록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특히 프랑스 군인들이 희생적으로 도와준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시우 회장님과 박근성 선교사님은 목숨을 걸고 끝까지 남아 저희를 구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 주셨습니다. 이 점에 대해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국가 정보원, 외무부, 주불대사관 등이 가봉 대사관 프랑스 외무부와 긴밀한 연락과 협력체제로 저희를 구해주신 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조일환 주불 대사님 정태인 영사님은 이른 아침 공항까지 나오셔서 저희를 맞아주셨습니다.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한위클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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